"약방에 가면 감초(甘草)가 빠지지 않듯 의류의 외형을 살리는데 반드시 필요한 심지(padding cloth)는 의류생산에 있어 감초나 다름없다."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주)젠제노(Gengeno) 석서균 대표가 심지를 화두(話頭)로 던지면서 인터뷰의 물꼬를 튼다.

 

심지란 무엇일까? 석 대표는 "겉감소재를 보완하는 역할을 하며, 의류의 전체 또는 어느 한정된 부위의 보강이나 형태의 보존을 위해 사용된다"고 말하면서 "심지의 종류에는 직물, 편성물, 부직포 등 여러 종류가 있다.

심지의 선택은 의류의 종류, 용도, 겉감 소재의 특성에 맞추어 유행의 변화와 개인적인 선호도를 고려해 사용되고 있다.

소재는 일반적으로 얇고 부직포 접착심지가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고, 두꺼운 심지는 오버코트나 자켓에 사용한다"고 알려주면서 기자의 궁굼증을 바로 해결해준다.

 

 

 

 

 

 

 

이어 "옷의 외형을 살리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부자재인 심지는 크게 접착심지와 비접착심지로 구분한다.

접착심지는 다시 직물심지(woven)와 부직포심지(non woven)로 구분하며, 비접착심지에는 모심지(hair cloth)가 있다"고 심지 업계의 일인자 다운 해박한 지식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또 "접착심지는 소재의 안정성을 높여 주기 때문에 봉제공정을 수월하게 할 수 있게 해주어 작업자의 능률이 향상된다.

현재 부직포에 접착제가 있는 심지가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다"면서 "국내 봉제산업이 비교적 호항이었던 1980~90년대에는 심지 업체들도 덩달아 성장을 거듭했다. 1986년 기준으로 국내 심지업체를 보면 접착심지와 모심지 업체가 50여 곳, 부직포심지 업체가 100여 곳에 이를 정도로 번성했다"고 알려준다.

 

아울러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가내공업 형태의 생산이지만 내수시장은 물론 봉제품 수출증가로 각 업체들은 심지 생산을 풀 가동했고, 생산시설을 확충했다. 당시 전체 심지 수용량의 95%가 국내산이었을 만큼 시장 장악력도 대단했다"고 설명을 보탠다.

하지만 이내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지금은 당시 내노라하던 다수의 업체들이 생산을 접었거나 아이템을 전환해 버렸다. 이로인해 내수 봉제 산업의 공동화(空洞化)로 심지의 수요가 대폭 줄어들었다. 이는 해외진출 봉제기업들이 가격경쟁력을 이유로 중국산으로 눈길을 돌렸기 때문이다"라면서 무척 아쉬워 한다.

그렇지만 '척박한 땅일수록 사랑받는 꽃을 정성을 기울이면 핀다'는 뚝심으로 올곳하게 과거 심지의 명성을 되살리기 위해 일층 매진(邁進)하는 주인공이 있다. 누구일까? 바로 의류용 심지와 안감, 마카지 제조공급사인 (주)젠제노의 석 대표이다.

 

 

 

 

 

 



석 대표와 함께 공장을 둘러보니 건물 앞 다른 마당에는 출고를 기다리는 제품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

건장한 직원들은 수출용 컨테이너에 물건을 적재하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분주한 모습에서는 현장의 역동성이 절로 느껴진다. 제직기와 싱글, 더블용 접착 코팅기가 분주히 가동되는 생산 현장은 그야말로 활기가 넘쳐난다. 국내 봉제산업이 호항이던 때로 시간을 거슬러 온 느낌이다.

모든 생산설비를 갖추고 원스톱 생산을 하고 있는 석 대표는 "몇몇 심지 제조사들은 베트남, 대만, 중국 등지에서 나일론 폴리사를 들여와 직접 제직한다. 우리 회사도 한때는 국내 유수의 섬유기업이생산하는 실을 공급받아 짜기도 했으나 '갑질'이 심해 10년 전부터 인도 등지에서 실을 직수입해 제직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수입한 실이 도착하면 상태를 파악한 후 양주와 남양주, 대구 소재 협력 공장에 OEM으로 제직을 의뢰한다. 그리고 제직된 원단을 이곳으로 실어와 코팅 공정을 거친다"고 알려준다.


이어 "코팅공정은 각사마다 노하우가 있다. 숙녀복에 강한 데가 있고, 신사복에 강한데가 있는데 지금은 거의 대중화가 되었다고 본다"라면서 "어떤 약품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품질이 달라진다.

약품의 가격이 Kg당 만원에서 이만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어떤걸 쓰느냐에 따라 고품질과 보통의 품질 등으로 구분된다. 코팅을 하면서 건조와 냉각 시키는 과정도 함께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코팅이 끝난 후 공정은 무엇일까? 석 대표는 이렇게 설명한다.

 

 

 

 

 

 

"코팅이 끝나면 엄격한 품질관리 기준에 따라 로트(lot) 테스트를 진행해 제품의 합격여부를 판정한다. 여기서 정품 또는 하품, 불량품으로 구분된다. 정품은 곧바로 포장을 거쳐 출고된다.", "요약하면 원사를 구매해서 티셔츠, 자켓, 블라우스 등 의류종류에 맞게끔 제직을 한다. 대게 발주처에서 알아서 오더(order)를 한다. 혼용율의 퍼센트 등 개발된 원단의 성질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대게 새로나온 원단의 스와치(swatch, 견본)를 1~2야드(yard) 잘라주면 우리 회사 기술팀이 직접 테스트를 한 다음 리포트(report)를 작성해 발주사에 제공한다.

 

발주처에서 리포트를 보고 거기에 맞춰 오더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우리 회사는 발주처가 요구하는 다양한 주문에 대응키 위해 물류창고에 재고를 종류별로 150만~200만 야드 정도를 비축하고 있다"라고, 이어 석 대표는 심지의 생산현장을 빠져나와 바로 옆에 마련된 마카지 가공실을 둘러보며 "마카지를 시작한지 4년 정도 되었다. 아직은 심지와 안감에서 벌어 마카지에 투자하고 있지만 사업 영역을 넓히게된 계기는 해외 봉제공장에서 심지를 보낼 때 마카지도 같이 원해서 시작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어려움도 있었지만 기왕 결심을 굳힌 터라 더더욱 뛸 생각이다"라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쥔다.

 

 

 

 

 

 

또한 "전체 직원 중 8명이 외국인 근로자다, 베트남과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등 이국땅에서 왔다. 일과를 마치고 최대한 편한 휴식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내에 별도로 기숙사를 마련했다. 물론 내국인도 원하면 이용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현장에도 냉방기가 갖춰져 있지만 생산설비가 뿜어내는 열기속에서 힘을 써야 하는 일이라 무척 덥다. 하지만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을 위해 이것저것 신경을 쓰고 있다."며 외국인을 비롯한 직원들을 위한 속 깊은 배려를 나타낸다.



석 대표가 심지 업계에 뛰어든 계기는 무었이었을까? 석 대표는 "고교 졸업반 때 취업을 목표로 6개월 코스 직업훈련과정을 거쳐 포항에 있는 삼포중공업에 입사했다.

 

당시 조직체계에서 반장은 대게 아버지 또래인 40대 후반이었다. 그 위가 기사인데 갓 공대를 나온 기사가 아버지 또래 반장에게 지시하는 것을 보고 어린 나이에 충격을 받았다. 이건 아니다 싶어 뒤늦게 대학에 진학했다"고 먼저 밝힌다.

이어 "이후 쌍용정유에 근무하다가 결혼을 했지만 빠듯한 생활이었다. 그때 당시 신성통상에 의류부자재를 납품하기 때문에 비교적 여유롭게 보였던 친구가 '심지를 생산한다면 팔아주겠다'고 제안을 해 그리하기로 했다. 그런데 친구가 기계구입 비용 등 그만 약속을 져 버렸다. 배신을 당했다"며 서글퍼한다. 하지만 석 대표는 퇴직금으로 '경원통상'이란 이름으로 구로구 가리봉동에서 겁 없이 간판을 내걸었다. 그때 나이가 29세였다. 시설을 제대로 갖추고 시작한게 아니라 소단위 납품으로 시작했다.

 

 

 

 

 

 

심지를 취급하면서 숄더패드 납품도 겸했다. 그러하다가 심지를 공급받던 란토르코리아, 한국바이린 등의 딜러가 됐다"면서 "본격적으로 완전시스템을 갖추게 된 것은 2000년쯤이었다. 첫 고객사는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주)진이라는 수출업체였으며, 미국의 유명 부직포 회사 등과도 거래가 성사되었다. (주)진이는 굵직한 바이어에 실크 블라우스를 납품하던 회사였다. 하지만 그 회사 대표의 피치못할 사정으로 회사 직원들이 새로 설립한 (주)금경과 인영이 닿아 본격적으로 오더를 받았다. 그 후 진도모피, 세계물산 등 수출 기업에 납품하게 되면서 안정을 찾아 수출오더에 이어 남대문과 동대문 시장과도 연이 닿아 내수에서도 본격적으로 심지를 공급하게 되었다"라고 힘들기는 했지만 과거를 돌이킨다.

또한 "국내 유명 심지 회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어떤이가 해당회사의 정보를 대가 없이 제공하겠다고 했으나 그냥 마음만 받기로 했다"고 석 대표는 회상하면서 "오로지 내 몸으로 익혀야 내 것으로 남는다"는 의미 깊은 사자후(獅子吼)를 던진다.

그렇다. 기자, 감히 판단하기에 석 대표는 '목이 말라야 우물을 판다. 평소에 준비 없이 있다가 일을 당하고 나서야 허둥지둥 서두른다'는 뜻의 한자어 갈이천장(渴而穿井)과 임갈굴정(臨渴掘井)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심지 업계의 산증인'인 것이다.

 



심지와 관련된 가격경쟁력의 고민은 없을까? 석 대표는 "공장을 가동함에 있어 인건비가 부담스럽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중국이나 베트남보다 비싼 건 사실이나 그 정도는 다른데서 어떻게 절약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커버가 가능한 차이다.

효율성 없이 방만하게 움직이기보다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시스템이 작동하게 해야 한다. 모두들 중국과 가격측면에서 경쟁할 수 없다고 말을 하는데 우리 회사는 어떤 중국 회사와 경쟁해도 자신 있다"고 바로 단언을 한다.

수출 및 내수현황은 어떨까? 석 대표는 "자체척으로 수출을 하다가 지금은 컨테이너당, 야드당 커미션 베이스로 중간 딜러를 통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주요 수출국은 브라질, 홍콩, 베트남, 중국, 이탈리아, 네덜란드, 포루트갈 등이다"라고 언급한다.

하지만 이내 "더욱 글로벌하게 해외시장을 확산시킬 자신감이 있지만 외국어 등 본인의 의사전달이 100% 전달이 안 되어 무척 안타깝다. 차선책을 강구하고 있다"라면서 "해외파트너 회사로 중국 상해 인근의 심지 공장이 밀집해 있는 치둥(Qidong)에 협력회사가 있다. 우리와 같은 아이템을 모두 생산한다. 우리 직원이 상주하기 때문에 해외로 진출한 우리나라 봉제공장들과의 거래를 함에 전혀 불편함이 없다"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이어 내수에 대해 "직접 거래하기도 하고 대리점을 통하기도 한다. 패션그룹 형지, 세정, 슈페리어, 콜핑 등은 직접 거래하고 있다. 심지를 비롯해 포켓용 안감까지 공급한다. 안감은 시장에서 구매해 공급하기도 하고, 생산가능한 안감은 직접 생산해 공급한다"라고 알려 준다.

또 "흔히 내수가 죽었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우리 회사는 내수 및 수출의 비중은 50대50이다. 결론적으로 내수는 살아있다. 시장공략을 제대로 해 볼 생각도 안하면서 죽겠다는 소리만 하는데 이는 고객들의 입맛에 맞게끔 영업을 안 해서 그렇다. 세계시장도 그렇지만 국내시장 역시 여전히 넓다고 본다. 아니 무한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회사의 업종은 이른 바 '영원한 벤쳐'라고 표현하고 싶다"라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쥔다.



석 대표와 소중한 인터뷰를 마치니 기자, 불현 듯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난다. 이는 맹자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이라는 표현에서 비롯된 말이 아니던가.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자기에게 이롭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것'을 뜻하는 아전인수(我田引水)와는 대립되는 의미이다.

 

더불어 임마뉴엘 칸트(Immanuel Kant)가 이야기한 '네 의지의 격률(格率)이 언제나 동시에 보편적 입법의 원리가 되도록 행위 하라', 아담 스미스(Adam Smith)의 '사람은 그 내면에 존재하는 공평한 관찰자의 눈으로 자신의 행동을 바라보라', 존 롤스(John Rawls)의 '정의를 찾기 위해서는 현재 자신의 처지와 무관한 원초적 상황에 자신을 놓아애 한다'는 명언도 생각난다. 또 기독교의 마테복음에 언급된 '무엇이든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이니라'라는 문구도 떠오른다.

그렇다. 석 대표는 이 모든 한자어와 명언등의 의미를 몸과 정신으로 실천하고 있는 '심지 업계의 영원한 일인자, 심지 업계의 영원한 산증인'인 것이다. 기자, (주)젠제노의 '장밋빛 미래'와 '양양(洋洋)한 전도(前途)'를 빌면서 발걸음을 서울로 향한다. 그것도 마구 기원하면서 말이다.